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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끄고 살아보기 일상은 기록보다 경험이다

by zuhause 2025. 4. 13.

기록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깊게 남았다

 

1. 찍지 않으면 잊어버릴까 봐

어느 날 문득, 사진첩을 스르륵 넘기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기억하고 싶어서’ 찍은 사진들인데,
어떤 건 아예 기억이 안 났고, 어떤 건 너무 똑같은 구도, 같은 카페, 비슷한 음식들뿐이었다.

“이건 진짜 기억을 위한 기록일까? 아니면 그냥 습관처럼 찍은 거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실험을 하나 해보기로 했다. 3일간 카메라 끄고 살아보기.
그 어떤 순간도, 어떤 풍경도, 어떤 음식도…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그 순간’ 안에 있어보기.

처음엔 나도 무섭더라.
‘그럼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카메라 끄고 살아보기 일상은 기록보다 경험이다

2. 기억은 렌즈가 아니라 마음으로 남는다

첫날은 정말 어색했다.
카페에서 라떼를 받았는데, 손이 자동으로 주머니로 갔다.
‘이거 찍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꾹 참고 폰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눈으로 라떼의 거품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에 머금은 온기를 천천히 느꼈다.

놀랍게도, 그 감각이 훨씬 생생하게 남았다.
사진 한 장 없이도 그 순간이 분명히 내 안에 들어왔다.

 

둘째 날엔 산책길에서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를 발견했다.
‘이건 꼭 찍어야 할 정도로 예쁘다’ 싶었지만,
대신 3분간 그냥 서서 바라봤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흙냄새, 그날 햇빛의 방향까지
그 순간의 모든 요소가 하나의 ‘기억 묶음’으로 저장된 느낌이었다.

이전엔 ‘찍고 바로 떠나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멈춰서서, 느끼고, 보고, 들고 가는’ 방식으로 달라졌다.

 

3.  기록 없는 하루는 가벼워지고, 깊어진다

이 실험을 하면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건
기록하지 않으니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점이었다.

‘좋아 보이는 장면’을 찾으려는 의식이 사라졌고
‘어떻게 찍어야 예쁠까?’ 하는 고민도 사라졌으며
‘SNS에 올릴까 말까?’ 하는 계산도 필요 없었다

그 자리에 남은 건 오직 ‘나와 그 순간’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더 이상 기억을 폰 속에 저장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기억은 사진보다 오래, 선명하게 남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진짜로 그 안에 있었으니까.

 

4.  다시 카메라를 켜기 전에 생각해본 것들

3일간의 실험이 끝나고, 다시 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이건 진짜 찍고 싶은 건가?’
‘아니면 그냥 안 찍으면 불안해서 그런 건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그리고 그 자체가 아주 큰 변화였다. 이젠 이렇게 바뀌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지금 이 순간, 그냥 경험해도 괜찮은가?” 묻기
특별한 순간은 한 장만, 나를 위한 기록으로 남기기
SNS보다 일기장이나 노션에 간단히 메모하기
사진이 아닌 감각과 감정으로 기억하기


중요한 건, ‘사진을 찍지 말자’가 아니라
“사진이 전부는 아니다”는 걸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것.

마무리하며 – 기록보다 소중한 건 ‘지금 여기’
우리는 너무 쉽게 ‘기억하기 위해’ 찍는다.
그런데 기억은 꼭 사진으로만 남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순간을 스치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 실험은 나에게 ‘기억을 남기는 방식’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겨줬다.
그리고 내 일상을 한층 더 느리게, 진하게, 온전히 살아보게 해줬다.

카메라를 끄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
그건 어쩌면 ‘진짜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일지도 모른다.